카테고리 없음
가출하려고 합니다.
상담사 치아
2023. 6. 2. 16:06

대학생 여자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거슬러 본 적이 없습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절대 하지 않았죠. 그렇게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공부도 꽤 잘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으로 진학도 할 수 있었죠.
문제는 대학에 입학하고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드디어 눈을 뜨게 된 거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희 집은 조선시대니?”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해야 하는 일, 하지 말아야 하는 일, 통금시간에, 부모를 대하는 자세까지. 옛날에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조선시대가 따로 없네요. ㅠㅠ 남자친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10시에는 집에 귀가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원래 9시인데 싸워서 얻어낸 성과입니다. ㅠㅠ) 그 외에도 나열하면 수없이 많지만 편지가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겠습니다. 규칙만 그러면 그나마 참겠는데, 부모님의 말투, 태도도 모두 조선시대입니다. 성인이 된 아직도 체벌받는다고 하면 친구들이 놀랍니다.
그러다 올 것이 오고 만 게, 제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함께 있고도 싶고, 스킨십도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남자를 사귈 거면 집에 데리고 와서 방문 열어놓고 만나라고 하네요. 밖에서 만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그리고 반드시 기독교 신자여야 한답니다. 참고로 오빠는 무신론자입니다.
자취방을 계약했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부모님께는 일방적인 통보만 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살다간 평생 아버지, 어머니의 딸로만 살게 되지 않을까 싶고, 이게 무슨 사는 건가 싶어요. 근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무섭습니다.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어서, 더 무섭습니다. 치아님. 정말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도와주세요. ㅠㅠ
------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가족’이라는, 또 ‘부모’라는 이름으로 정서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듯합니다. 세상이 꽤 ‘독립적’이 되었다고 해도 이처럼 가족 간의 갈등이 변함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ㅠ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취방을 계약하고 독립하신 것은 너무도 잘하신 일이며, 가장 궁금하다고 하셨던 “정말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라고 하신 질문에는 “아니요. 손톱만큼도 잘못하신 일이 없습니다.”라고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은 나와 타인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나일까요? 타인일까요? ‘나’는 아니니 ‘타인’일 가능성이 크겠네요. 하지만 유교주의 문화가 깊게 배어있는 한중일 3국에서는 유독 ‘가족’을 타인과 분리하여 오히려 ‘나’에 가까이 두곤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의 생활과 권리를 침해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와 무관한 일에 의무를 지우곤 하죠. 그런 문화가 익숙하여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분은, 그걸 너무도 당연한 ‘미덕’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 그건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일 뿐입니다. 가족은 단 하나, ‘힘들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의 역할만 하면 되니까요.
인생은 나의 것입니다. 세상 그 누구라도, 심지어 그 대상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의 말이나 생각을 지배하려 하고, 내 행동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책임지지도 못 할 일을 마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오직 내 생각대로 계획하고,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다만, 반드시 지켜주셔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인이시니, 그렇게 선택하신 길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택하건 가족을 택하건, 둘 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무조건 그 선택을 존중하셔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그렇게 두 영역을 모두 경험하고 나면 아마 머지않아 두 영역을 화해시킬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사연 주신 분 안에 생기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하셨다면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선택하신 그 한 편으로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밀고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담을 원하는 분은, 사연을 이메일(orichia@nave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사연은 답장드린 후 바로 삭제합니다. 포스팅은 개인적인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내용을 일부 창작한 후 익명으로 진행하며 원하지 않는다고 적어주시면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담료는 후불이며, 아래 배너를 참고하세요.
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