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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me too)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한 이유

상담사 치아 2018. 2. 25. 13:42




얼마 전,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난, 그동안 저와 만나면서 ‘성폭력 피해’라는 문제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던 분들이 무려 1시간을 넘게 그 주제로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맞습니다. 당연합니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사례를 상담해왔던 저로서도, 피해자분들이 만들어내는 새파랗게 날이 선 이 자기 고백의 릴레이가 얼마나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이며 응원의 함성을 지르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저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해자의 이름 뒤에 선명한 욕설이 붙고, “이 기회에, 그런 일을 당한 여자가 더 많이 나와서 말을 해야 조금이라도 달라질 거야.”라고 말하며 피해자의 폭로를 종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틀린 말이냐고요? 아닙니다. 맞죠. 욕설이 아니라 태형을 받아 죽을 만큼 매를 맞아도 싸고, 더 많은 폭로가 이어져야 이후 자신의 권력을 약자에 대한 성적 강요로 활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생각들이 조금씩이나마 처벌에 대한 공포감으로 바뀌면서, 사소한 행동 하나도 조심하게 될 테니까요. 제가 등골이 서늘해진 것은 그분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첫째.
제가 서늘하게 공포를 느낀 부분은, 그분들이 가해자를 욕하는 장면이 아니라 가해자를 욕하는 그 순간 그분들이 보여준 ‘군중심리’입니다. 그 순간 저는, 평소에는 입을 다물고 있던 그분들을 이처럼 용감하게 공공장소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 다수에 묻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그 군중심리가, ‘피해자’를 공격하는 상상을 했던 것입니다.

미투운동이 전개되면서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2차 피해’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다수는 이 단어를 그저 ‘관련하여 받게 되는 또 다른 피해’ 정도의 사전적인 의미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 또는 그 가족이 대한민국에서 이후 감당해야 하는 2차 피해는 그런 사전적 의미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기만 합니다. 가장 나쁜 사례를 하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결혼한 여성인 나는 어느 날 나의 과거 성폭력 경험을 대중매체(언론이나 SNS)를 통해 고백합니다.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가해자는 처벌되고 사건은 그렇게 정의롭게 일단락됩니다. 그렇게, 아팠던 내 상처는 조금 치유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사건을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이 사건을 잊지 못하는 한 사람이 생겨 버렸습니다. 바로 남편입니다.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나와 대화하지 않으려 하며 성관계도 피하는 ‘변화’와 마주치게 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이제는 정말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내 잘못이 아닐까? 그런데 왜?

그렇게,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고백 이전에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오히려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가끔 나가던 동창회에서도, 동네 빵집 사장님에게도, 심지어 아이들 학교에서 마주치는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나는 마치 동물원 철창에 갇힌 야생동물이 된 것 같습니다. 왜 저토록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수군대는 걸까요? 저들은 도대체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그나마 ‘나’에 대한 이런 변화는 이 악물고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죠? 왜 우리 집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또 학교에서 나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세상에 묻고 싶습니다. 나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면서요? 그런데 왜 다들 이러는 걸까요? 정말 나에게 잘못이 없는 게 맞나요?




둘째.
제가 온라인 상담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모습 중 하나는, 남편의 악행(?)을 고백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의 사연에 많은 분이 올려 주시는 “당장 이혼하라. 도대체 왜 참고 사냐?”라는 댓글입니다. 물론 이분들은 대개 사연 속 ‘고통’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는 분들이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가득한 분들이고, 그런 어려운 결정을 단호하게 내릴 수 있는 단단한 ‘용기’를 가진 분들입니다.

하지만, 간혹 그 중 어떤 분에게는 이런 댓글이, 내 이야기가 아니어서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종종 외도 중 경험하는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의 표현 중에 “외도나 불륜을 그렇게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가 등장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가 아닐 때 사람은 정말 정의롭고 용감할 수 있습니다.

대화 나누던 제 지인 분들을 비난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럴 자격이 없으면 대화도 하지 말라는, 그런 식의 무식한 의견은 더더욱 아닙니다. 말해야죠. 더 많은 사람이 이 주제를 이야기하고 용기를 독려해야 합니다. 다만, 저는 그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왕 미투운동을 이야기하고 주변의 누군가에게 미투운동 동참을 종용하려면, 그전에 먼저 성폭력의 2차 피해에 대해 좀 더 알고 이해하고 마음속 깊이 공감해주시기를 말입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서 좀 더 쉽게 말하고 있는 면은 없는지, 나는 과연 그들이 지닌 지금의 아픔과 앞으로 겪게 될 2차 피해의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 그렇게 무심코 주입한 용기에, 종용하는 분만큼이나 ‘2차 피해’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한 피해자가 너무도 쉽게 용기를 얻어 폭로하고 그만큼 쉽게 2차 피해의 고통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지는 않을지, 충분히 살펴보고 고민한 후에 말하고 행동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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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저는, 이글이 손톱만큼이라도 미투운동이 가라앉거나 주저되는 논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글을 계기로 지금까지는 추상적으로만 보였던, 이후에 다가올 2차 피해의 고통까지도 많은 분이 공감하고 함께 조심하고 배려하는 행동변화의 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투운동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미투운동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우리 약자가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선전포고이며, 유일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선제공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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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