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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군대 가야 성 평등이 성립되나요?
상담사 치아
2018. 6. 3. 13:15
안녕하세요, 치아님. 저는 요즘들어 성별 관련 문제에 관심이 많아진 한 학생입니다. 관심이 많다보니 여기저기 찾아서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정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100명이 있으면 100명이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르더라고요.
최근에는 '여권이 아직도 뒤쳐져 있다' 같은 뉘앙스의 글을 봤는데요, 댓글에 '요즘은 오히려 여성우월주의이다. 여자들은 군대도 안 간다. 심지어 요즘 여성전용주차장 등 여성전용시설들이 늘고 있다. 이게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면 뭐냐.'라는 식의 댓글을 봤습니다. 근데 저는 진짜 모르겠습니다. 여자들이 군대를 가는 것이 성평등한 일인지, 아니면 안 가는 것이 성평등한 일인지, 이렇게 여성전용주차장 등 시설들이 늘고 있는 것이 여성우월주의를 입증해주는 것인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한 것은, 언젠가 치아님 블로그에서 성상품화가 좋지 않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라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학교 교과서에서도 성상품화는 나쁜 것이라고 배웁니다. 그러나 저는 궁금합니다. 물론 성상품화가 되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성상품화 시키는 것은 범죄겠지만 상호 동의 하에 성적인 사진을 찍고, 그걸 이용해 상업적 이득을 얻는 것조차도 왜 나쁜 짓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양쪽 다 오케이를 한 일이라 할지라고 성상품화는 나쁜 것인가요? 나쁘다면 왜 나쁜 것일까요? 알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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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성 평등’에 관심이 많아지셨다고 하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평등하지 못한 시선과 행동의 피해자였던 여성 스스로 깨어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지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가해자의 편에 서있던 남성들이 하나둘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은, 변화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질문하셨으니 하나씩 답변 드려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개인적으로, 여자가 군대 가는 것이나 여성전용주차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성 평등’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하나하나의 조건들을 성 평등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큰 흐름을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 평등’은 한마디로, 성별을 떠나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저 이 문장만 가슴에 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시면 됩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면 대한민국에서 여자도 군대 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은 역차별에서 결정된 정책이 아니라 남성 스스로 효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낸 정책입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근력이 강하니 군대라는 조직은 남성으로 조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판단을 남성이 했고 그래서 그런 정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남성 스스로, 모든 면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책을 바꾼다면 당연히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강제적 군 입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만의 특징이기도 하니 일반화하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여자가 군에 입대하는 것에 대한 차별적인 조건이나 시선이 적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군 입대의 기회는 모든 성별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차별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성 평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여성전용주차장 역시 여성에 대한 우대라기보다는 장애인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약자’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표현이 아니라 ‘범죄에 좀 더 많이 노출되는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입문과 가까운 곳이나 가급적 지하1층에 여성전용주차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역시 ‘성 평등’과는 무관합니다. ‘여성 전용시설’ 역시 소비에서 남성보다 중요한 타깃인 여성만을 공략하여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겠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므로 ‘성 평등’과는 무관합니다.
두 번째 질문.
말씀하신 질문은, “생계에 필요하건 돈을 벌 목적이건, 스스로 원해서 성매매 하는 여성이 있다면 왜 그것까지 나쁘다고 해야 하느냐?”라는 정답이 없는 오래된 논쟁입니다. 따라서 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하는 말이 정답이라기보다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계에 필요하건 돈을 벌 목적이건 스스로 원해서 성매매 하는 여성’을 저는 존중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좋다. 나쁘다.’의 관점에서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이라도 매매하여 생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은 오히려 그것을 구매하는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성 상품화’의 관점은 바로 성을 구매하는 남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몸까지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게 만드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으며,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제가 ‘성 상품화’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 보다 더 많은 의견을 접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어느 한 주장을 일방적으로 추종하기 보다는 나만의 ‘합리적이고 건강한 논리’를 구축해놓으신다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큰 자산이 되실 거라 믿습니다. 건강한 고민을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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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