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에게 미안하고 두렵습니다.

 

 

안녕하세요, 치아님. 전에 상담을 받았던 미혼 여성입니다. 치아님 상담이 너무 도움이 되었고, 관계수업 책도 사서 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 이야기는 남친이 있는데, A라는 제 몸만 원하는 하이에나같은 사람과의 이야기였습니다. 제 감정을 보시고 잘못 든 길이니 점검해야 할 필요를 말씀하셨죠. 정말 공감했습니다. 그 A와는 끝났고 남친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또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해서 이메일을 드립니다. 마음의 괴로움. 제가 남친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한마디로 죄책감과 두려움입니다. 미안하고... 제가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 벌 받을 거 같고. 특히 제가 남편처럼 생각했나봐요. '이 사람을 어떻게 평생볼까, 비밀은 없다는데 어떡하지, 나처럼 간 작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나' ... 남친과 같이 있는데 착하디 착한 남친을 보는게 좋지만 한편으로 괴롭습니다. 누군가에게 얘기를 안하면 제가 더 우울해질 거 같아서요. 관계는 정리가 되었으나 제 맘이 이런게 ㅜㅜ... 제가 말을 안하면 모른다고 하신 말씀을 되새기는게 맞겠죠.

도돌이표처럼 이런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는데 정말 에너지 소모가 크더군요. 이런 맘들 관계들 다 내던져버리고 싶은 마음, 어두운 방에끝없이 누워있고 싶기도하고요, 나도 잘못했는데... 지금 남친이랑도 헤어지면 맘이 더 홀가분할까, 근데 상상만 해보지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제게 믿음을 줘서인가봅니다.

(여담입니다: A와 그 밤 뒤에 병원을 방문해서 pcr검사에서 두 가지 균에서 양성이 나왔습니다. A에게 온 것이 명백합니다. 너무 화가 나더군요. ㅠㅠ)

들어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입금 곧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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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쌓여 있을 때 내 몸은 정직하게 반응합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그러다가 정말로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죠. 그래서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하는 것은 내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실제 신체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내가 가진 나쁜 것들을 모두 모아서 저 사람에게 던지자. 저 사람은 상담사잖아. 그걸 처리할 능력이 있을 거야.” 맞습니다. 그러시면 됩니다. 그러라고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거니까요.

남친과 함께 하면서 경험하시는 ‘죄책감과 두려움’은, 비록 힘드시겠지만, 자신을 정말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설정하시고, 생기는 족족 쓰레기통에 버리셔야 합니다. 그 감정을 끌어안고, 벌 받을 거 같다 생각하고, 이 사람을 어떻게 평생 볼까 상상하며 괴로워하다 보면 내 안에 그 사람에 대한 이질감이 생기게 됩니다. 같이 하면서 괴로운 것은 차라리 피하고 싶어 하는 본능 같은 거죠. 그래서 “지금 남친이랑도 헤어지면 맘이 더 홀가분할까.”라는 생각도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상상뿐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언젠가는 실제로 너무 홀가분해지고 싶어서 실행에 옮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담처럼 말씀하신 A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정말 헤어지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병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전염되는 병이 아닙니다. 성병 보균자와 섹스해도 전염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죠. 그럼에도 병이 전염되었다는 것은 A라는 사람의 몸에는 정말 많은 병원균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며 그것은 즉 그가 정말 많은 여성과 난잡한 성교를 한다는 방증입니다. 소중한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A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에, 남친과의 관계를 좀 더 짜릿하고 색다르게 만들어줄 ‘변화’를 계획해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좋은’ 사람과의 관계는 비록 지루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개선할 가능성은 더 큰 법이며, 적어도 나를 망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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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