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알콜 중독입니다.
제가 이번에 상담 메일을 드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남편이 술 마시고 성매매 하고 와서 저에게 걸렸기 때문입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술 먹고 실수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울며불며 빌고 잘못했다 사죄하지만 거의 알콜 중독 수준인 남편은 그렇게 언젠가 또 술을 먹고 실수를 할 것입니다. 언제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언제는 차로 가로수를 들이 받고, 언제는 옷 벗고 공원벤치에서 잠을 자고, 언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주먹으로 경찰관의 코뼈를 부러뜨렸습니다. 모두 술을 마시고 한 짓이며 다음날 깨면 본인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게 연기라면 남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정말 다음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 종일 혼자 아기를 보며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남편의 장점
1. 심성이 착하고 긍정적, 밝다. 집안일, 아기 돌보는일에 적극적.
2.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 가능성도 크고 현재 연봉도 나쁘지 않음. 나보다 두배 가까이 벌고있음.
남편의 단점
1. 알콜중독 – 이미 면허도 취소된 상태임.
2. 상대방을 배려하는 섹스를 하지 못함 (무작정 들어닥치려), 거의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감.
3. 나랑 싸움이 잦음 - 이유는 대개 술 문제.
옵션 1. 이혼
장점 - 어차피 한심하게 느껴지고 잘 맞지도 않는것 같고 이제는 사랑의 감정도 안드는 남편이랑 힘들게 결혼생활 유지하느니 깨끗하게 갈라선다.
단점 - 둘 사이 아이가 있으니 얼마나 깨끗할지 모르겠음. 싱글맘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것 같음. 공동양육권을 가지게 될테니 아이를 이집 저집 왔다갔다 하게 하는게 못할짓 같음. 이혼한다고 행복해질 자신이 없음 (실패했다는 느낌으로 힘들것 같음, 외로울것 같음). 혼자 수입으로 싱글맘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기가 싫음 (생각하면 무서움, 마음의 준비가 안됨). 도움 받을 친정도 없음.
옵션 2. 표면적으로 결혼을 유지하며 한집 생활
(남편에게 마음도 안주고 기대도 없이 경제력을 공유하며 아이를 같이 키움)
장점 - 경제적으로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음, 아기 키우기가 훨씬 수월함, 아이가 적어도 엄마 아빠와 같이 생활함
단점 - 진정한 행복이 있을까 모르겠음, 사이좋은 부부사이가 아닌 부모랑 같이사는게 아이한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도 모르겠음. 이렇게 내 마음을 주지 않고 살다가 남편이 먼저 이혼하자 할지도 모르겠음.
옵션 3. 남편의 추잡한 행동을 용서, 알콜중독 치료를 진심으로 도와줌
장점 - 희망적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 (적어도 다음 사건이 터지기 전까진). 경제적으로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음, 아기 키우기가 훨씬 수월함, 아이가 적어도 엄마 아빠와 같이 생활함.
단점 - 남편이 평생 단주하고 혹은 적어도 폭음을 안하고 살아갈거라는 믿음이 나한테 없음. 결국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 폭음하고 실수/사고내고 사과하고 다시 또..)
이렇게 정리해 봤는데 결정을 하기가 힘드네요. 세 선택지 다 제 맘에 드는게 아니라 그런가봅니다. 솔직히 저 혼자 현재 남편과 제 수입을 합한것 만큼 번다면 저는 이혼을 택할것 같습니다. 돈의 노예같지만 그게 제 자신임을 인정합니다.
제가 결정을 내리는데있어 가장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세가지 옵션 다 힘든 길이라는거 알고 제 선택에 대한 댓가라 생각합니다. 치아님께서 제가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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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사연 너무 가슴 아프게 잘 읽었습니다.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어느 하나 완벽한 결론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사람 사는 이치겠지요. ㅠ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드리건 그저 지나가는 제삼자가 아무 것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한 많은 분에게 의견을 물어보시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구요. 항상 드리는 이야기이지만 머리는 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이 더 낫습니다. 그만큼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옵션 3’을 추천 드립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저 혼자 현재 남편과 제 수입을 합한 것만큼 번다면 저는 이혼을 택할 것 같습니다. 돈의 노예 같지만 그게 제 자신임을 인정합니다.”라고 쓰신 문장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야기에는 손톱만큼의 비난도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혼을 이야기하는 아내분들에게 대놓고 여쭤봅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10년 정도는 쪼들리지 않고 살아갈 경제적 여유가 내게 있는지 확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력하면 그렇게 될 거라는 희망 말고, 지금 당장의 경제적 여유 말입니다. 아니라면 이혼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혼은 정말 ‘현실’이고 배고픈 상태에서 현실과 맞붙는 건 무모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이제 단점을 다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평생 단주하고 혹은 적어도 폭음을 안하고 살아갈거라는 믿음이 나한테 없음.”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알콜중독 치료를 진심으로 도와준다고 하셨으니 어차피 만드셔야 할 겁니다. 믿음 없이 그런 도움은 줄 수 없으니까요. 반복적으로 속더라도 무조건 믿으셔야 합니다. 가능하다고. “결국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 폭음하고 실수/사고내고 사과하고 다시 또..)” 이것 역시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한 부정적인 결론일 뿐입니다. 미래는 내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가장 든든한 건, 내가 항상 희망적으로 바라보던 그 ‘미래’가 정말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확신이 들었을 때, 그때도 나에겐 ‘이혼’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다시 올 거라는 것입니다. 이혼이 반드시 꼭 ‘지금’이어야 하는 이유가 지금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옵션 3’이 가장 바람직한 결론이며 이왕 그렇게 결론 내렸다면 나에겐, ‘옵션3’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