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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파트너, 해도 될까요?

상담사 치아 2020. 1. 29. 11:15

 

남친과는 클럽에서 만났습니다. 누군가와 ‘원나잇’이라는 관계를 맺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날 술이 과했는지 결국 모텔에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지껏 해본 섹스 중에서 가장 황홀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가 ‘선수’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달콤한 말, 애무부터 섹스가 끝나고 난 후의 배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섹스였습니다.

 

이후 저는 그 사람에게 빠져버렸습니다. 매일 그 사람과의 섹스만 생각하고 혼자 상상하다가 밑이 젖는 일이 반복됐죠. 결국 우린 주기적으로 만나 섹스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원했고 지금까지는 행복합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항상 남친과 헤어지라고 합니다. 그런 관계는 언제나 여자가 손해라고 하면서요. 왜 멀쩡한 니가 다른 남자의 섹스파트너나 해주고 있냐면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라고. 사실 저도 섹스파트너는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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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섹스파트너’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나의 주체적인 노력이나 고민, 의지로 형성된 것인지 말입니다. 만약 지니고 계신 그 가치관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라면서 습득한 사회적인 규범이나 관습, 미디어의 영향, 타인의 이야기 등에 의한 것이라면, 이제는 그 가치관을 ‘실제의 나’라는 변수에 적용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에 ‘악’인 것이 정말 나에게도 ‘악’인지 말입니다.

 

‘섹스파트너 관계는 나쁘다.’

 

물론 많은 경우 이 명제는 ‘참’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이 관계를 절실하게 원하고 즐기고 있을 때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거나, 내가 그 사람과의 섹스를 온전히 즐기고 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섹스파트너라는 건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저 나의 행복에 충실한 것뿐이니까요. 이럴 때는, ‘섹스파트너’라는 관계의 정의에 매몰되지 말고, ‘나의 행복’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폭력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마조히스트처럼 성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쾌감을 경험하는 사람이 자신의 쾌감을 위해서 진심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는 상황에서는,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섹스파트너라는 관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그와의 섹스를 원하고 그 관계에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가에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생각보다 쉽게 답을 얻어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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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