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빚, 시댁에 말해도 될까요?
남편은 결혼 전,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면서 1년 넘게 직장을 갖지 못 했고 그 과정에서 생활비로 빚을 졌습니다. 얼마인지는 말 안 했지만, 직장을 곧 잡을 거고, 결혼생활에 아무 문제 없게 이른 시간 안에 해결한다고 장담해서 그 말을 믿고 결혼했습니다. 너무도 사랑하는 사이였기에 사실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로 헤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다행히 남편은 결혼 후 직장을 다니게 됐고, 생각보다 급여는 적었지만, 저와 맞벌이를 하면서 신혼살림이 부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시댁에 갔다가 대화 중에 ‘결혼자금으로 1억이나 보태줬으면 됐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며느리 노릇을 잘하지 못한다고 시부모님께 꾸중 듣는 자리였기에, 알고 있는 척 태연하게 넘어갔지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결혼 준비는 온전히 제가 모아둔 돈으로 다 했었거든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확인해보니 그 돈은 빚 갚는 데 다 썼다고 하네요. 설상가상으로 아직도 빚이 6천만 원이나 더 남았다고 합니다.
뭐 이왕 해버린 결혼이고, 사랑하니까 빚이야 서로 노력해서 갚아나가면 된다지만, 문제는 시부모님은 저에게 서운한 걸 말하는 자리에 항상 이 돈 ’1억‘을 언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부모님께 한다고 하는데도 서운해하시는 것도 속상하지만, 저는 구경도 못 해본 돈을 말씀하시면서 제게 무언가 엄청난 것을 해주신 것처럼 말씀하실 때는 저도 모르게 굉장히 서러워지거든요. ㅠㅠ
그냥 다 말씀드리고 싶은데, 남편은 절대 안 된다고 하네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그냥 남편 동의 없이 말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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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하셔도 좋을지, 참으시는 것이 나을지를 결정해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그건 상담사의 영역은 아니거든요. 다만, 이런 이야기는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다는 사연 주신 분의 바람에는 어떤 ’기대감‘이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기대가 단지, ’뭣도 모르고 잘난 척하시는 시부모님에게 한 방 먹이는‘ 정도라면 개인적으로 저는 얼마든지 찬성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충격은 아마 반드시 받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일로 시부모님께서, 자신들의 부족한 아들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그런 아들을 잘 간수하며 데리고 살아주는 며느리에게 새삼 감사하여 앞으로는 왠만하면 꾸중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살갑게 잘해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계시는 거라면, 그건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돈으로 내 아들이 빚을 갚았다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냐? 너는 아내가 되어서 남편 몰래 시부모에게 그런 걸 고자질하고 싶니?”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시면 오히려 다행 아닐까 싶네요. ㅠㅠ
남편분의 동의 없이 일을 진행하는 것 역시 권해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게 ’기대‘도 충족하지 못하고 돌아온 집에서 만난 남편의 표정은 그야말로 싸늘한 냉소일 테니까요. 시부모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고 계신 아내분이 ’갑‘이었다면, 폭로한 이후부터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분의 ’갑질’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가정불화의 씨앗이 될 테고요.
물론 그렇다고 “그러니 참고 가슴에 묻으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참고 묻으면 그대로 내 가슴 속에 트라우마가 됩니다. 세상에, 하고 싶어도 참고 살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내 잘못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내가 억울한 취급까지 받게 된 이런 일까지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뭡니까? 이러지도 말아라, 저러지도 말아라.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으시다면 말씀드리는 게 맞습니다. 단, 반드시 남편분과 합의를 통해 진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분에게 동의하는 대가로 이 빚에 관한 면죄부를 주시면 어렵더라도 결국은 합의하실지도 모릅니다. 물론 반대로, 말하지 않는 대가로 남편분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실 수도 있겠죠.
만약 동의를 받고 말씀드리게 된다면, 시부모님께 말씀드리면서 상상하는 ‘기대’ 역시 현실적으로 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 방 먹이는’ 정도가 되겠죠. 놀라는 그 표정을 즐기는 정도로 내 마음을 달래신다면 나름 성공적인 전략이 될 것 같습니다.
이혼하지 않으실 거라면, 평생 함께해야 할 나의 배우자와 ‘적’이 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인 전술이 아닙니다. 꼭 건강한 해결책을 찾아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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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