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1만 피스 퍼즐
시사회를 다녀온 지인이 나에게 “형은 아마 이 영화 좋아할 거야.”라고 하며 영화를 추천했을 때 내겐 커다란 의문이 생겼다. ‘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거로 생각했을까?’ 시간이 갈수록 궁금증은 커졌고, 결국 난 개봉하는 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봐야 했다. 궁금했으니까. 도대체 왜?
영화의 시작은 ‘미스터리물’이었다. 한 소녀의 죽음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 현수(김혜수). 그저 마무리 보고서에 이름 석 자만 남기면 그만인 이 사건에, 하지만 그녀는 점점 집착하게 되고, 관객은 사건의 미스터리를 현수와 함께 풀어가는 동시에 현수의 심리상태에 점차 공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게 생긴 또 하나의 의문. 도대체 현수는 왜 죽은 세진(노정의)에게 저토록 집착하는 걸까?
영화는 마치 1만 피스 퍼즐을 조립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손전등 하나 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을 탐험해 들어가면서, 어디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미스터리물이 아니라, 내 방에 차분히 앉아 하나하나의 조각을 끼워 맞춰보며 완성해가는 1만 피스 퍼즐 조립. 해본 사람은 모두 안다. 퍼즐은 그것을 조립하여 완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무념무상의 안정감을 주는 힐링의 시간이 된다는 것을.
다른 미스터리 영화를 보듯이 시작부터 한참을, 눈에 불을 켜고 영화가 주는 과제를 풀어가던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이 영화는 이렇게 보는 영화가 아니구나.’ 현수가 세진의 죽음에 가까이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동시에 자신의 상처를 보듬기 시작했다면, 이 깨달음이 오고 난 후부터는 나도, 영화가 아닌 나의 감정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의 끝으로 가면서 현수도 나도 함께 힐링 받고 있었던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게 또 하나 있었다.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나는, 현수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낼 단서를 찾기 위해. 마치 내가 현수에게 빙의한 듯, 그렇게 나도 함께 사건을 풀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가슴을 쿵 울리는 반전을 접하면서 (난, 분명 ‘뒤통수를 망치로 한 방 얻어맞은 듯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가슴을 쿵 울리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마주하면 얼얼하고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영화 속 대부분의 반전과 달리, 이 영화의 반전은 기쁘고 행복했고 그때서야 영화의 모든 실타래가 여지없이 풀려나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 난 정말 수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살아가지만, 정말 내게 소중한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영화에서 현수(김혜수)는, 왜 그렇게 이 사건에 집착하느냐는 지인의 질문에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한다. 단 한 명이라도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줄 알았다고. 그 아이는 그렇게 죽을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나고 싶었다고. 그건 사실, 세상을 향한 현수의 부르짖음이었을 거다.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길래, 사람들은 나를 연민하고 응원하고 도와주려고만 하는 걸까. 왜 단 한 사람. 나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면서, 충고나 조언 말고, “괜찮아.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느냐고.
그래, 현수는 진심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혼자여도 괜찮아.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어.”라는 용기 있는 모습 말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때로는 약한 모습 모두 다 보여주며 누군가에게 안겨 엉엉 울어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궁금증은 풀어졌다. 왜 현수가 세진의 죽음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그리고 ‘언제나 영화 속에서 ‘강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김혜수는 진심으로 이 역할을 하고 싶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와의 그 공감이 그런 완벽한 연기를 만들어냈을 수도.
세상에는, 수없이 교류하지만 내게 아무 의미도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사람들이 있고, 교류가 없거나 고작 단 한 번 교류했을 뿐임에도 큰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상담사’를 직업으로 가진 나는 내담자에게 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상대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며 충고나 조언 말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편이 되어 곁에 있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는 나의 등 뒤로, 영화가 나에게 던지는 “당신의 인생은 괜찮나요?”라는 질문을 곱씹으면서, 그때서야 난 깨달았다. 왜 지인이 나에게 “아마 이 영화 좋아할 거야.”라고 말했는지. 지인이 맞았다. 이 영화는, 한동안, 아니 꽤 오랜 시간 곱씹으며 돌아볼 영화가 될 것 같다.
꿀팁 하나.
저는 6천 원을 할인받아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관 앱으로 들어가면 문체부에서 주는 6천 원 할인권을 내려받을 수 있더라고요. 저는 몰랐거든요. ^^
상담을 원하는 분은, 사연을 이메일(orichia@nave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사연은 답장드린 후 바로 삭제합니다. 포스팅은 개인적인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내용을 일부 창작한 후 익명으로 진행하며 원하지 않는다고 적어주시면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담료는 후불이며, 아래 배너를 참고하세요.
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