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때문에 힘듭니다
저는 원래 고민 같은 걸 누구에게 얘기를 잘 안하는 성격입니다. 조리있게 설명할 자신도 없을뿐더러 얘기해봤자 해결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너무 잘 알고 있어서요. 그리고 상대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면,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내가 뭘 해야하지.’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요. 근데 이제는 막상 절벽까지 밀려온 것을 보니,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요. 음... 근데 제가 인생을 잘못 살아와서 그런가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요.ㅎㅎㅎ 가족들에게 얘기하면 그냥 ‘네가 좀 더 잘하면 돼.’하고 넘어가신 분들이라 도움이 안되고...
슬퍼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면 그냥 울면 되는데 이제는 그냥 슬픈게 아니라 곧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뭔가 자해를 하는 것도 모자라 몸을 자르고 싶어요. 이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는 알아요. 다만 육체가 아프면 정신적 고통이 해소되는 기분이라 하게되는 것 같아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해야하려나요....하다하다 식사하는 것도 힘들어요. 아무 맛도 안나는. 먹으면 토할 것 같고 그저 살기 위해 쑤셔 넣고 먹는...뭐가 문제인가 생각해봐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이것 때문에 그랬구나.’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잘 못찾아내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슬픔, 기쁨, 행복 혹은 설렘, 무서워야할 것들도 무섭지 않고 부딪히거나 다쳐서 아픈 것도 그다지 잘 모르겠어요. 제 눈에는 뭘 하던 무의미해보입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다 그냥 그래요.
이걸 쓰면서도 그와중에 걱정되는 건, 이 메일을 확인할 당신이 답장을 뭐라고 써야할지 고민하고 이 사람이 귀찮게 징징거리는 거구나 생각하고 있을까봐 괜히 보내서 바쁜사람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뭔가..음... 더 이상 쓰는 글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힘들다고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설명해야 상대방에 제 마음을 알지도 모르겠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제 마음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것도 웃기고 뭐하는 짓인지도 모르겠어요. 젠장. 제가 많이 외로웠나봐요. 허기랑 외로움이랑 같은 기분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지긋지긋해요. 죽으러 가고 싶어요. 살고싶지 않아요. 그와중에 할 거 다 하고 주말에 시간 잡고 뛰어내려야겠다고 계획하는 건 무슨 어이없는 심리인지. 아...웃음이 나와요. 가면 그냥 가는 거지 날짜를..참...아무튼...이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더 이상 쓰면 제가 이상해보일 것 같아서요. (이미 이상해졌으려나요 하하하.)
-------
저는 원래 어려서부터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행복해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겠죠. 그러니 “답장을 뭐라고 써야할지 고민하고 이 사람이 귀찮게 징징거리는 거구나 생각하고 있을까봐 괜히 보내서 바쁜사람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사연 주신 분의 감정은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하게 무엇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슬픔, 기쁨, 행복 혹은 설렘, 무서워야할 것들도 무섭지 않고 부딪히거나 다쳐서 아픈 것도 그다지 잘 모르겠어요. 제 눈에는 뭘 하던 무의미해보입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다 그냥 그래요.”라는 감정은 너무도 명확하니까요.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는 이유가 없어 보이니 더 혼란스러우신 것입니다. ‘드디어 내가 이렇게 미쳐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경험하고 계시는 그 증상이 바로 정확하게 ‘우울증’의 초기증상입니다. 우울증은 명확하게 판별이 가능한 특정 원인이 없더라도 신체적, 감정적으로 증상을 보이는 일종의 뇌 질환입니다. 평소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일도 좀 더 부정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일이나 행동에 관한 동기도 현저하게 낮아지며, 의욕도 사라지고 사물이나 사람에 관한 관심도 없어지게 됩니다. 행동의 범위와 강도도 줄어들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스스로의 마음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생각의 침전반응도 경험하게 되죠.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며, 아무리 극복하려고 노력해보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분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운동도 좀 하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그래.”라는 조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숟가락 들 힘도 없는 분에게 “이것저것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건강해져.”라는 조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숟가락 들 힘도 없는 분에겐 숟가락을 들어줄 가사도우미 로봇을 구매해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대안이죠.
시간이 갈수록 우울증 증상을 경험하는 분이 점점 많아집니다. 특히 경쟁이 심하고, 빈부격차가 심한 대한민국에서, 우울증은 그야말로 ‘국민 질환’이죠. 한 가지 특정 원인으로 시작되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평소에 다양한 원인이 만들었던 마음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모여 우울증 증상을 만듭니다. 중요한 건 우울증은 의지나 정신이 나약해서 생기는 증상이 아니라 엄연히 뇌에 물리적인 상처가 나면서 시작되는 뇌 질환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셔야 지금 경험하시는 감정이 결코 ‘내 탓’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든 병이 아니니 나의 의지만으로 극복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ㅠㅠ
다행스럽게도 우울증은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입니다. 꾸준하게 치료를 받으시면 2~3개월 안에 80% 이상의 분들이 상태의 호전을 경험합니다. 최근에는 항우울제의 약효도 높아지고 부작용도 현저히 낮아져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를 통해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사연에서 “뭐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해서 정신과를 가도 제가 멀쩡해 보이는지 별 처방도 없고.”라고 하셨는데, 나쁜 병원을 찾아가신 것 같습니다. 다른 병원에도 꼭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를 우울하게 하는 이 감정과 맞장을 뜰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나 하나뿐이지만, 그 전쟁에서 사용할 강력한 무기는 나 스스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도끼를 든 야만인들과의 전투에 드론 폭격기나 다연발 기관단총을 장착하고 나서는 기분이 어떨지 꼭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내가 우울한 것은 나 때문이 아닙니다.
상담을 원하는 분은, 사연을 이메일(orichia@nave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사연은 답장드린 후 바로 삭제합니다. 포스팅은 개인적인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내용을 일부 창작한 후 익명으로 진행하며 원하지 않는다고 적어주시면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담료는 후불이며, 아래 배너를 참고하세요.
상담사 치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