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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상처가 만든 우울증

상담사 치아 2024. 4. 29. 11:10

 
 
치아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실연의 상처로 상담을 드린 여성입니다. 실연을 극복하지 못해 너무 힘들어 치아님께 상담 메일을 보냈고, ‘당신을 칼로 찌르고 있는 것은 헤어진 남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라는 답신에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 지난 일을 되새김하고, 사진을 뒤져 그의 얼굴을 찾아내어 곱씹고 있는 건 바로 저였으니까요. 저를 사랑하고, 저를 위한 노력을 하라고 하셨지요.
 
치아님의 말씀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들추는 일도 하지 않고, 혼자 우는 일도 줄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려고 마음먹고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잘 흘렀는데, 요즘,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 그런지 스멀스멀 슬픔을 들추고 혼자 우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엉엉 울고, 설거지를 하다, 길을 걷다가도 훅하고 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고 맙니다. 저의 존재를 거부당한 것 같고, 저란 인간이 산산히 부서진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슬픔이 마치 마약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회피의 수단, 슬픔에 침잠하려는 듯 보입니다.
 
치아님. 6개월이 지났지만 전 아직도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범한 표정으로 살고 있는 이게 맞는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처럼 저를 이 늪에서 꺼내어 줄 명쾌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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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답장이 조금이나마 사연 주신 분께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후로도 사연 주신 분만의 방법으로 건강하게 아픔을 극복하고 계셨던 것 같아, 그 역시도 정말 감사드리고요.
 
다만, 제가 지난 메일에 드렸다고 말씀해주신 “사연 주신 분의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칼로 찔러 계속 피를 내고 있는 건 바로, 사연 주신 분 본인이십니다.”라는 상황은, 안타깝게도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간은 단단한 의지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해 오시면서 막아내셨다면, 지금은 그렇게 단단하게 쥐고 있던 의지의 끈을 툭~하고 놓쳐버린 셈입니다. 그리고 그 끈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보내주신 메일에 정확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잘 흘렀는데, 요즘,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 그런지 스멀스멀 슬픔을 들추고 혼자 우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엉엉 울고, 설거지를 하다, 길을 걷다가도 훅하고 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고 맙니다. 저의 존재를 거부당한 것 같고, 저란 인간이 산산히 부서진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슬픔이 마치 마약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회피의 수단, 슬픔에 침잠하려는 듯 보입니다.”
 
위에 언급하신 내용은, 단순히 헤어진 연인이 생각나서 잠시 우울해진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우울증의 초기 증상입니다. 많은 분이 우울증을 ‘내가 만든 감정 상태’라고 오해하셔서, 누군가 우울하다고 하면 “밖으로 나가 햇빛도 쐬고, 사람도 만나고, 웃고, 운동하며 떨쳐버려 봐.”라고 조언하지만, 우울증은 결코 그렇게 쉽게 내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종의 감기 같은 질병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누군가 “갑자기 열이 나고, 기침도 하네.”라고 말할 때, “기분 탓이야. 밖으로 나가 햇빛도 쐬고, 사람도 만나고, 웃고, 운동하며 떨쳐버려 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병원에 꼭 가봐.”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몸이 힘든 건,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만든 열과 기침 때문이지,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니까요. 병원 진료를 통해 이 증상을 완화해주면, 몸 상태도, 기분도 훨씬 나아집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은 내 의지가 약해서, 또는 내가 특정 사안에 집착해서 발생하는 증상이 아닙니다. 우울증은 어떤 경험을 통해 나의 뇌에, 분비되는 세로토닌을 좀 더 쉽게 재흡수하는 경향이 발생하여 만들어지는 현상입니다. 그 현상이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들곤 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이러스가 열과 기침을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감정이 추락하니,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까지도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곤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작은 신체적인 변화가, 엄청난 감정의 악순환을 만드는 셈이죠.
 
따라서 내게 우울증의 징후가 보인다면, 의지로, 신념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병원에 가서 열을 내리는, 가래를 줄여주는 약을 처방받아 드시는 것처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셔서 진료와 처방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면, “전 아직도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라는 감정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감정도 모두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그냥 희미해지는 것이 좋은 건지 확신이 없으실 수도 있지만, 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좋은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그런 감정은 하나도 도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우울증 관련 약물의 의존성도 부작용도 적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래도 ‘약물’은 좀 부담이 되신다면, 대신 오프라인 상담을 이어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상담사와의 정기적인 대화는 약물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으니까요.
 
어느 방향을 선택하시건 중요한 건, 지금 사연 주신 분에게는 감기 같은 질병이 찾아왔고, 그걸 물리적인 또는 심리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혼자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지금 경험하고 계신 그 감정은, 단순히 의지나 신념으로 극복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상담을 원하는 분은, 사연을 이메일(orichia@nave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사연은 답장드린 후 바로 삭제합니다. 포스팅은 개인적인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내용을 일부 창작한 후 익명으로 진행하며 원하지 않는다고 적어주시면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담료는 후불이며, 아래 배너를 참고하세요.
    
상담사 치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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