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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숭고한 직업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수도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존경받아 마땅하고, 국가가 모든 인프라를 동원하여 최고의 예우를 갖춰 대우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는 추호의 이견도 없습니다.
 
다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소방관에게 부여된 것은, 생명을 구하면서 살 수 있는 자격이지, 생명을 구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건 소방관의 권리이지, 결코 의무가 아닙니다.
 
영화 '소방관'에서 진섭은 건물 붕괴가 우려된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119 구조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안에 사람이 있다잖아요.”라는 원칙을 대며 들어갔다가 함께 들어간 여러 대원과 함께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맙니다. 고귀합니다.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일까요?
 
어차피 모든 일은 확률 게임입니다. 그것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 잃는 손해가 월등히 더 크다면, 아무리 그 명분이 숭고하다고 하더라도 우린 그것을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소방관들은 자기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인명을 구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캐릭터로서는 감동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래선 안 됩니다. 붕괴의 가능성이 크다고, 경험 많은 전문가인 대장이 판단했으면, 아무리 그 목적이 숭고하다고 해도 몸을 사려야 합니다.
 
실리적으로만 판단해도 결론은 같습니다. 그렇게 소방관 한 분이 목숨을 잃으면, 미래에 그분 덕분에 살았을지도 모를 수많은 생명을 포기하는 셈입니다. 그 순간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적이지 않은 무모한 결정입니다.
 
혹시 이런 말씀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 계산적인 생각으로 함부로 그분들의 숭고함을 평가절하하지 말라고요. 그분들의 드높은 희생정신을 당신 따위가 감히 상상이나 하겠냐고요. 맞습니다. 평범한 제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의 결정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꼭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분들의 철학과 정신, 실행력을 존경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그분이 구조한 아이가 유치원을 하원하는 장면을 보며 후배 소방관은, 이런 게 우리 직업의 보람이라며 진하게 감동할지 모르지만, 순직한 소방관 자신의 사라진 인생과 남편 또는 아버지를 잃은 그 소방관 가족의 불행은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요? 직업이 소방관이라는 이유로 정말 그 모든 것이 당연하게 희생되어 마땅한 건가요?
 
제발 감동을 빙자한 이런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가치관이 가득한 영화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소방관=희생’이라는 어이없는 선입견을 만들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신이 아닙니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죽음이 두려운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를 보란 듯이 수행했을 때 진심으로 박수와 찬사를 주는 것뿐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를 넘어 의무감으로 자신의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어떤 행위를 수행했다면, 우리가 할 일은 박수와 찬사보다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꾸짖음이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너 자신을 좀 더 아끼라고. 네 가족을 좀 더 배려하라고. 네가 미래에 구할지도 모를 수많은 생명을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소방관분들이 부담스러운 사명감에 무모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인명을 구조할 때, 비로소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명예와 안전이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 더 많은 미래세대가 마음껏,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직업’인 소방관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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