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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제가 마흔 중반이 다 되어 낳은 늦둥이입니다. 막내를 가졌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정말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하며 키웠죠.
그러던 막내가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됐습니다. 지방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자취하고 있기에 제가 가끔 내려가서 음식도 해주고 용돈도 주고 올라오곤 합니다. 그런데 막내의 방에서 여자의 옷들과 화장품, 그리고 각종 여성용품 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자기 없을 때는 절대 방에 못 들어가게 하던 게 서운했었는데 마침 내려간 날 연락이 되지 않아 이것저것 번호를 눌러 들어갔다가 그런 꼴을 보게 된거죠. 여자랑 동거 중이라고 확신했고 눈에서 불이 났습니다.
하지만 막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작년부터 조금씩 여자 옷을 구입하게 되었으며 여자 옷을 입어보며 쾌감을 즐겼고 아주 가끔 게이바나 젠더바에 갔었다고.
너무 충격을 받아 사지가 벌벌 떨렸습니다. 막내는 계속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면 모든 걸 정리하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평생 집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아들로 살았던 막내라서 도저히 이런 상상이 되지 않는 일들을 어떻게 행했을까 아직도 이게 현실인가 비현실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도피처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건가요?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막내는 절대 아빠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이게 저 혼자 알아서 될 일인지도 모르겠고요. 아마 애 아빠가 알면 당장 죽일 듯이 행동할 겁니다. 안 그래도 보수적인 사람이 나이 들면서 더 꼰대가 됐고 화도 많아졌거든요. 막내가 왜 이런 짓에 빠져서 이런 고통을 겪는지 마음이 아프다가도, 도대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줬는데 내가 뭘 잘 못 키웠다고 이러는 건지 엄마로서 서럽기도 합니다.
밤마다 가슴에 바위를 올려놓은 듯한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힘듭니다. 어떤 조언이라도 부탁드립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제 3자의 의견을 듣고 싶어 사연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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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연에서 어머님의 나이를 유추해보고는,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과연 사연 주신 분께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실 수 있으실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말입니다. 개인의 성격과 무관하게, 살아온 시간의 무게는 그만큼 새로운 것을 향한 거부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다가 보내주신 사연 마지막에 적어주신 “어떤 조언이라도 부탁드립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제삼자의 의견을 듣고 싶어 사연 보냅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야, 저도 용기 내어 답장을 드려 봅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드리건 간에,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사연 주신 분께서 판단하고 결정하실 문제이니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 아드님을 100% 이해할 수 있으며, 아드님의 행동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건 실제 제 아들의 이야기이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차근차근 이유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래전, 제 내담자 중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던 고등학교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그런 성향의 친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더 폭력적이던 시절이라, 저는 이 친구가 주변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자아를 지켜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은 아이의 자살로 끝나버렸습니다. 아마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자신이 여성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걸 폭력과 감금으로 어떻게든 고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이는, 다시 태어나면 꼭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자기 방 베란다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례를 말씀드리는 건 결코 어머님의 지금 태도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으면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고, 방법을 모르면 더더욱 내가 알던 기존의 방식대로 사태에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머님이 경험하신 감정이나 태도, 그에 따른 대응은 그런 점에서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연하다’는 것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ㅠㅠ
아드님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경험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최근 들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평범한 남자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을 테고, 누구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며, 어디 물어볼 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감정을 커밍아웃하는 행위가 결국은 이 사회에서 자신을 매장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한 건 결코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종종 등장할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항상 같은 제품을 생산하던 라인에서 가끔 조금 다르게 생긴 물건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유전자의 어긋난 조합이건, 아니면 삶의 경험이 만든 변화건, 중요한 건 그건 너무도 당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우린 그 사실을 그저 ‘다르다’라고만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안 들렸던 사람이나, 자폐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 혹은 한쪽 팔이 남보다 짧은 신체를 가진 채 태어난 사람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은 결코 그분들이 무언가를 잘못해서도 아니며, 그분들의 그런 성향은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저 대다수 사람과 조금 ‘다를’ 뿐입니다. 이 ‘다를 뿐이다’라는 사실을 이해하실 수만 있다면 아드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편해지실 수 있습니다.
내가 남과 조금 다른 모습을 지녔을 때, 그래서 세상 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려도, 내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입니다. 그간 아드님은 아마,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많이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따뜻하게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이 생각하기에는 ‘고작 그런 거밖에 해줄 게 없다’ 정도의 포옹일지 모르지만, 그 따뜻한 포옹 한번이 아마 아드님에게는, 세상 모두를 등져도 두려울 게 없는 커다란 용기를 주게 될 것입니다. 아버님에게까지 이야기하는 건, 그렇게 아드님과 든든한 ‘한 편’이 된 이후, 아드님과 상의하고 합의해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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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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