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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했습니다.

상담사 치아 2019. 1. 16. 11:15

 


괴롭고 힘들어 사연보잽니다. 낙태했습니다. 그순간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사실부터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 저를 믿어주셨던 부모님을 어떻게 뵈어야 하는지에 대한 절망으로 매일매일이 죽을 것처럼 힘이 듭니다. 이 남자와 헤어지고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 사실을 숨겨야 할까요? 숨긴다고 해도 평생 그 사람에게 죄책감이 들어 힘들 것 같습니다.


남자는 병원을 찾아갈 때는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따면 책임지고 결혼까지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던 남자거든요. 근데 정말 웃기죠. 그렇게 수술하고 다음날 그 남자가 피씨방에서 8시간 게임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 미친년처럼 울부짖었고 그 남자는 처음엔 나를 달래다가 나중엔 자기가 무슨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냐고 하더군요. 끝나고 나에게 가려고 했다고 하면서요.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냐면서.


그순간 이 남자랑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공포영화를 보는 것철머 소름이 끼치고 그 남자가 무서웠습니다. 난 이렇게 세상 끝 절벽에서 죽고 사는 걸 고민하는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냥 완벽한 남처럼 악마처럼 느껴졋씁닏. 그런데 헤어질 수 있을지, 헤어져야 하는건지, 그냥 다시 만나도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런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죽고 싶습니다. 아니, 솔직히 저는 살고 싶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그냥 죽어야할 만큼 죄인인거 알지만 그래도 죽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살고 싶은거 같습니다. 아니,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죽고 싶습니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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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파하시는 사연에 어떤 이야기로 상담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내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가 부득이한 이유로 그 아이를 떠나보낸 경험은 거의 모든 여성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자 아주 오랜 기간 자학하게 만드는 형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가 연인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와 무관하게, 남자는 이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남친분의 무심한 행동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알고 계실 필요는 있습니다. 남친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남자들이 그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여성에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남자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낙태’를 경험한 여성분들에게 항상 이런 이야기를 드립니다. 낙태가 다른 개인적인 경험보다 훨씬 더 아픈 이유는 여성분들이 뱃속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않으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임신은 내 인생의 행복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기상황이며 ‘나’는 내 인생의 행복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나와 내 인생을 보호할 목적으로 한 행동은 결코 자학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조심하셨어야 했던 잘못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건’이 벌어진 지금, 내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면 과연 누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폭력에 정당방어가 있는 것처럼 그 순간 낙태라는 나의 결정은 적어도 ‘나’를 위해서는 정당한 행동이었으며 그렇기에 내가 그 일로 위축되거나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은 의미 없는 ‘자학’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사실을 숨겨야 할까요?”라고 하신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살면서 경험했던 큰 수술이나, 소중했던 가족을 잃은 기억 등을 연인에게 이야기하고 말고는 그 사람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그저 나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면 그만인 선택의 문제입니다.”입니다. 설사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라고 해도 그걸 연인에게 이야기할 의무는 없습니다.


지금의 남자와 헤어지는 문제는, ‘사건’ 이후 그 사람의 행동 같은 다른 조건은 다 지우고, 그 사람은 예전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지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판단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기준에서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신다면 안타깝지만 헤어지는 것이 두 분 모두를 위해서 현명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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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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