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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님, 저는 제 어린날의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몇살이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어린 날 오빠들과 함께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대략 제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친오빠들은 2차성징이었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던날 오빠들은 그들의 성기에 플라스틱백을 씌웠고(콘돔처럼) 다같이 샤워를 하러 들어가 욕실에서 오빠들은 각자 바닥에 눕고 저더러 오빠들 배위에 앉으라고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놀이라고. 오빠들도 상당히 얼굴이 들떠보였고 저도 신나는 놀이에 드디어 오빠들이 끼워준다고 생각하며 시키는대로 배위에 앉았습니다. 더 내려가라고 더 내려가 앉으라고 말했고 그렇게 성기가 성기에 삽입이 되는 기분을 태어나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각자 누워있는 오빠들 배위를 번갈아가며 한번씩 앉았다가 또 옮겨앉았다하며 그렇게 놀다가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사정하지 않았고 저는 그냥 그렇게 왔다갔다 번갈아 앉다가 나왔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참 야릇한 놀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제 여인인생 첫 성관계의 기억입니다. 그 이후로 마치 없었던 일인듯 모두 잊고 자랐고 자기전 가끔 그생각이 문득 번개치듯 떠오르면 저는 얼른 잠이 들었습니다. 아마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그 일에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오빠들과는 그냥 정말 특별히 잘할것도 못할것도 없는 똑같은 여느 무뚝뚝한 남매사이로 자라왔습니다. 오빠들은 무뚝뚝하지만 여동생 걱정을 속으로 많이하는 전형적인 오빠들의 모습으로 그렇게 아무일없는듯 우리는 모두 침묵하며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모두들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성실히 살고 있으며 부모님이 적어도 자식이 걱정이라는 말은 안하시도록 그렇게 다들 정상적으로 살고있습니다.
전부 다 잘 흘러가고 있는데 저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자꾸만 이 기억이 또렷해집니다. 오히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안되던 시점에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 불현듯 떠오르고 떠오르면 고개를 세차게 젓고 노래를 부르거나 잠이들려고 노력하면 끝이 났는데 지금은 그 일이 너무 자주 떠오르고 잠들기 힘든밤 그 일이 떠오르면 그 밤은 꼬박 그 견디기 힘든 징그러운 상상들로 제 밤을 하얗게 지새웁니다. 생각을 안하고 싶은데 자꾸만 생각이 나를 짓밟으면 저는 제 뺨을 때리고 제 피부를 할퀴고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모든것은 정상적으로 흘러갑니다. 백발 노인이 되어가는 아버지 어머니.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을 일구고 키워내 사회로 보내신 두분의 흐뭇한 미소. 부모님의 도움없이 크게 사회 성장을 이뤄낸 우리 오빠들. 그 오빠들이 이룬 어여쁜 가정과 우리 새언니들 우리 조카들. 근데 왜 나는 세월을 역행할까요? 그들은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어머니가 나를 불러 앉히십니다. "얘야 엄마가 너에게 할말이 있다"하시며. 사람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나는 생전 짐작조차 해본적이 없는 일인데 정말로 한번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는 일인데 우리 엄마가 나를 저렇게 부르시는 순간 나는 짐작을 하게됩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뜸을 들이셔? 엄마 내가 이집 딸이 아니기라도해?" 어머니는 아무 대답을 못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내 엄마인데, 아빠와 오빠는 핏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제 인생에 제2의 큰 사건이 왔습니다. 어머니께 괜찮다고 대번에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이렇게 큰 짐을 어떻게 혼자 가슴에 지고 사셨소,"하고. 엄마 살아온 인생은 내가 알고 하늘과 땅이 안다고. 그 누구도 엄마한테 돌을 던질 수 없다고. 나는 이미 장성했고 내가 이렇게 크기까지 단 한번도 나를 외부인으로 느껴본적이 없다고 그런 엄마의 노력과 가슴의 돌덩이에 외려 감사하다고. 어머니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와 한달을 아무렇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고 웃으며 괴로움에 몸부림 치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의 부재로, 나이차이 많이나는 오빠들의 부재로 늘 혼자있던 집, 지나치게 감성이 풍부하던 나의 어린시절에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외로운 나날들, 어릴때부터 늘 따라오던 사람들의 뒷말들, 지나치게 행동을 조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던 왕따로 물든 나의 십대시절, 괴로운 내 어린날의 기억
모든것은 정상적으로 흘러갑니다. 명절인 추석, 설날, 어여쁜 조카들, 부모님의 안녕. 근데 내 시간만 자꾸만 역행을 합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가족간이기에 웃으며 이야기하고 떠들다보면 갑자기 찾아오는 그 징그러운 기억이 내몸을 핥고 지나갑니다. 그 기억이 내 몸을 핥고 지나가면 끈적한 침이 내 몸에 남아 뱀처럼 나를 자꾸만 스멀스멀 감싸며 나를 학대하게 만듭니다.
이 감당하기 힘든 기억을 온전히 내 정신과 몸으로 감당하고자 노력하면 어김없이 내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손목을 긋고, 울면서 내 뺨을 내려칩니다. 붓고 멍이 들때까지. 정신차리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소리칩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도와주세요.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알려주세요 하고요. 남들처럼 살아왔습니다. 근데 지금은 제가 너무너무 힘이듭니다. 가끔 떠오르는 그 기억들. 오빠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근데 뭐가 문제라서 자꾸만 이렇게 못난 사람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까요. 이런 저에게도 누군가가 정말 해줄 말이 있을까요. 저는 지금 어디에 서있나요
아……. 애초에 경험하지 말았어야 하는 기억과 그 경험이 만든, 그 누구도 정체를 확신하여 이야기하기 어려운 감정 때문에,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ㅠㅠ
적어주신 이야기들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릴 적 악마들에 의해 받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도 충격이었고, 어머니 이야기 역시 전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듣기만 한 제가 이 정도인데, 그 모든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연 주신 분은 어떠셨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꽤 담담하게 사연을 적어주신 것에 놀랐습니다. “오빠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라고 하신 말씀에도 놀랐고,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그런 엄마의 노력과 가슴의 돌덩이에 외려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연 주신 분이 너그럽게 포용하려고 노력한 그 경험들의 크기와 무게가 과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ㅠㅠ
인간의 정신에는 ‘자기보호 기제’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본능적으로 온전하게 나 자신을 보전하고 싶은 바람을 지니고 있기에, 그 바람을 방해하는 외부의 물리적 원인이 출현하면 반사적으로 ‘나’를 지키려고 스스로 자기보호 기제를 작동하게 됩니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가 오히려 예의 바르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큰다거나, 내 안의 불안을 지워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거나 다리를 떠는 것으로 불안을 분산하는 것 모두 자기보호 기제의 일종입니다.
사연 주신 분의 어릴 적 기억이 자신의 의지로 쉽게 차단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보호 기제의 영향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소녀의 감성에도 그 경험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며 그걸 눈치챈 그녀의 뇌는 그것을 재빨리 마음속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 버린 것입니다.
어머님과 관련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척이나 강력했던 사연 주신 분의 자기보호 본능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별거 아닌 일’ 정도로 그 일을 포장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오히려 그런 기억을 안고 살아온 엄마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 사건 역시 사연 주신 분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 마음속 심연에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사연 주신 분의 자기보호 기제는 타인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강력한 만큼 ‘나의 감정’을 보호하는 데는 탁월했죠. 하지만 강력한 만큼 서툴기도 했던 그 자기보호 기제는, “문제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떠올라 나를 괴롭힐 수 있다.”라는 원칙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내담자분들에게, 아픈 경험을 하면 초기에는 내 안의 분노와 슬픔을 모두 밖으로 쏟아내라고 부탁드리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세상 무너지는 한바탕 난리굿을 하고 나면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은 그 사건으로부터 다소 거리를 둘 수 있게 되니까요. 마음속에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상태에서도 내게 더는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초기의 분노와 슬픔의 감정표출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조금 더 건강한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종종 삶의 긴장이 다소 풀어질 때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사연 주신 분의 자기보호 기제가 가라앉혔던 기억은 스스로 떠올라 버렸고, 다뤄지지 않은 채 내 안에서 오랜 시간 곪을 대로 곪아 처음보다 훨씬 더 무거워져 버린 그 녀석은 이제 나의 자기보호 기제가 쉽게 눌러 버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난 손목을 긋고, 자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아픈 기억들이니까요. ㅠㅠ
트라우마 센터를 찾아 시간을 들여 관리하셔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때 겪어내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한바탕 겪어내서, 앞으로는 두 눈 부릅뜨고 그 녀석과 마주하셔야 합니다. 두려워도 걱정되어도 말입니다. 생각으로만 도와달라 소리치지 마시고, 실제로 오프라인 상담사 또는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을 찾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세요.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께 이겨내고 나면 아마 이후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얻은 기분이 드실 거예요. 그토록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녀석들이 이젠 가볍게 내 눈앞에 둥둥 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 행복한 경험을 꼭 하시게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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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치아 드림